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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연극'…억울하지 않은 '최루성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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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보는 내내 엉엉 울었다. 제목부터 ‘슬픈연극’이니 얼마나 슬프겠나. 작품의 정체성은 포스터만 보아도 답이 나온다. 서정적인 배경에 중년의 남녀가 서 있는 모습은 ‘아, 눈물 콧물 빼겠구나’ 싶은 최루성 드라마의 표본이다. 하지만 ‘뻔하다’고만 설명하기엔 조금 그렇다. 약 90분간의 짧은 공연에 우리 삶의 ‘진짜 슬픔’이 방울져 내려서다.

중년 부부가 ‘사과 한 알’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남편은 ‘밤에 먹는 사과는 몸에 나쁘다’며 칭얼대고, 아내는 ‘다 먹어’ 하며 으름장을 놓는다. 아내가 세탁실로 들어간 사이, 남편은 객석을 향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아내를 만나 결혼하기까지에 대해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아내가 나선다. 주요 내용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난관을 극복해 오기까지의 과정이다. 객석은 어느새 조그만 웃음소리와 훌쩍이는 소리들로 찬찬히 메워진다.

‘슬픈연극’의 흐름은 예상 그대로다.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려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애써 밝은척하며 그의 죽음을 부정하려 한다. 하나의 죽음을 둔 ‘긍정’과 ‘부정’ 사이의 상호작용은 익숙한 슬픔을 낳는다. 하지만, ‘익숙한 슬픔’만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슬픈연극’의 ‘진짜 슬픔’은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있다.

부부는 서로가 없을 때 자신의 속내를 말한다. 두 사람의 추억은 작거나 크게 엇갈린다. 예를 들어, 남편은 아내의 첫인상을 ‘쌀쌀맞다’고 기억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보는 순간 ‘콩닥콩닥거렸다’라고 되새긴다. 남편은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독수리 다방’이라고 추억하고, 아내는 명동의 어느 커피숍이라 기억한다. 당최 딱 맞아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지만 그 풍경조차 낡고 빛바랜 사진처럼 소소하고 정겹다.

남편 혹은 아내는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첫 번째 구성원이자 함께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료’다. 작품 속 중년 부부는 그 역사의 기록들을 ‘말’을 통해 구현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느리게 퇴적되고, 슬픔은 그만큼 점층된다. 고즈넉한 식탁에 앉아 ‘예뻤던’ 아내의 옛 얼굴을 더듬는 남편의 입꼬리나, 남편의 키가 작았던 것도 안보였던 시절에 대해 얘기하며 ‘배시시’ 웃는 아내의 얼굴은 아름답지만 서글프다.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장면도 여럿 있다. 남편의 ‘이젠 그냥, 뭐 혼자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가…’와 같은 뉘앙스의 대사는 ‘최루의 폭격’이다. 그럼에도 ‘최루 드라마’에 속았다는 억울함은 들지 않는다. 그 ‘슬픔’이 완성되기까지 쌓인 역사가 얼마나 켜켜한 지 알기 때문이다.

연출가 민복기는 ‘생활 언어’를 통해 연극과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연극 ‘거기’, ‘슬픈 대호’ 등을 선보였던 극단 차이무 특유의 ‘말소리’는 이번 공연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무대 위 배우들이 객석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관객이 먼저 무대 위 배우들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슬픈연극’은 후자의 상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작품의 무대는 ‘무대’로 남기보다 객석의 한 풍경으로 들어와 더 큰 공감을 자극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공연은 많다. 그중 대부분은 아픈 여운을 남긴다. ‘슬픈연극’은 되려 개운하다. 삶의 균열은 언제나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비단 나만의 비극이 아니다. 슬픔 중의 가장 큰 슬픔은 ‘나의 슬픔’이라고 한다. ‘슬픈연극’이 정말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음’을 통한 이별은 태어난 자라면 모두가 겪는 슬픔이다. 누구나 겪는 슬픔, ‘슬픈연극’은 짧지만 더디게 그 상처를 위무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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